다음은 이창용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금융위 직원들에게 보낸 퇴임사입니다.
뒤돌아보니 작년 3월 13일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란 중책을 맡은 지 벌써 1년 8개월이 지났습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호기 있게 공직사회로 들어왔지만 교수로선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업무 - 국회업무, 행정업무, 언론대응 등 - 들이 소심한 가슴을 조여 올 때까지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몇 번이나 옆방에 걸려있는 역대 부위원장님들의 사진을 보면서 “중간은 해야 되는 데..”라고 다짐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때로부터 벌써 1년 8개월이 지났습니다. 이젠 국회에 가도 목소리가 움츠려들지 않고 언론과의 저녁 자리에서도 농담을 주고받게 되었으니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간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금융위 가족 모두가 정신없이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새로 출범한 조직이자리도 잡기 전에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가 닥쳐왔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충격이었지만 “금융”을 책임지는 부처인 만큼 위기대처의 책임과 결과에 대한 비난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눈앞의 불을 끄기에도 급급한 상황에서 42개의 법률안을 책임진 부서로서 직원 모두가 밤새워 국회에도 나가야 했습니다. 얼마나 업무강도가 높았으면 과거 초임 사무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금융위가 한 때 기피 대상 부처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금융위 출범 이후 1년 8개월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전세계 어느 나라보다 우리 경제의 회복이 빠른 데에는 금융위 가족들의 헌신적 노력이 있었다고 자부합니다. 예산권도 인사권도 없는 작은 부처이지만 위기를 대처하는과정에서 정책 주도가 무엇인가를 명백히 보여주었기에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부처가 되었습니다. 위기가 기회란 말대로 서브프라임 사태는 금융위의 존재감과 위상을 높여준 역사로 기억될 것입니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부족한 제가 큰 실수 없이 중책을 마친 데에는 금융위 가족들의 도움과 가르침이 너무나 컸습니다. 전광우 전 위원장님은 위기의 한 가운데서 마음고생을 같이 하면서 자신감과 소신을 잃지 않게 이끌어 주셨습니다. 진동수 위원장님은 경제논리만 앞세우던 저에게 섬세한 위기대응, 법의 중요성, 꼼꼼한 일처리,조직관리의 ABC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제게는 모두가 선배이셨던 금융위 간부님들께는 특별한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조직의 위계질서와 성공을 위해 후배에게 헌신적으로 예의를 갖춰주시고 표 나지 않게 모자란 점을 채워주셨습니다. 제 잘난 맛에 모래알 같은 조직생활을 해왔던 교수로서는 기대하지 못했던 대우였습니다. 후배 직원들은 제게 공직자의 사명감이 무엇인지 보여 주었습니다.
- 매일 새벽 12시 위기 대책회의를 마친 뒤 귀가해서 새벽 2시 뉴욕 시장 상황을 인터넷으로 찾아 아침 7시까지 회의 자료를 만들어야 했던 000 주무 서기관, - 여야 대치 속 자정이 지나 법안 통과가 무산되자 준비가 부족해 일을 그르쳤다는국회의원의 질타를 받으면서도 1년간 정성들여 만든 법안을 다시 싸들고 묵묵히 계단을 내려오던 000 사무관 - 뜨거운 여름 일요일 저녁 급하단 전화 한통에 서로 등이 맞붙는 서초동 청사 사무실로 나와 밤늦도록 Q&A를 만들던 000 과원들, 인간의 행동을 개인적 이해득실로 해석하려는 경제학자에게 여러분들은 바보스러울정도로 사명감을 가진 공직자가 아직 이 땅에 많이 존재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막상 이 자리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부탁드릴 일도 생각납니다. 막 걸음마를 시작한산은민영화, 단기자금시장 선진화 방안 등 주요 프로젝트가 성과를 볼 수 있도록 관심 부탁드립니다. 평소에는 필요 없어 보이더라도 해외 analyst와 미디어를 대상으로한 텔레컨퍼런스가 지속되도록 각 과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위기가 닥친 후 IR을해봐야 소용이 없음을 우리는 너무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개인의 업무 경험이 조직의 자산으로 제도화되도록 보다 체계적인 인수인계 manual 작업도 필요한 듯합니다.
여러 숫자 중에서도 1이란 숫자는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저 또한 금융위원회의 초대 부위원장이었다는 사실을 귀하게 간직하겠습니다. 향후 어느 곳에 가 있더라고 금융위원회는 제 공직생활의 “친정”이 되었습니다. 친정에서 여러분들과 보낸 1년 8개월의 시간들을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금융위 가족 여러분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도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2009년 11월 9일이창용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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